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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것들/사색들

결혼이라는 내키지 않는 숙제

by 흑백인간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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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그냥 막연하게 서른 살 전후로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겠지? 했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었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나도 당연히 할 줄 알았다.

어느덧 나이가 30대 중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이 숙제를 시작조차 못했다.

 

학교 다닐 때도 하기 싫은 숙제는 안 했다. 그냥 매를 맞거나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숙제가 있는지 조차 몰라서 못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안하겠다는 내 의지가 있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숙제를 안함의 대가를 왜 매로 치러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었다.

고작 그 숙제 하나 안한게 뭔가 인생에 큰 오점이 됐나? 아님 누구한테 피해를 줬나?

 

정말 아이러니 한 건, 내가 결혼이라는 숙제를 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완벽하게 해 놓았단 사실이다.

이미 내 소유의 집도 있고, 안정된 직장 그리고 결혼자금까지 모두 다 준비가 되어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도 나름 가정적인 생활에 특화되어 있다 자부한다.

근데도 희한하게 숙제를 시작하는 것 조차 내키지가 않는다. 

 

내가 준비한 만큼의 절반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들도 결혼들을 많이 한다.

그 이면엔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시기에 하니까 못하면 낙오된다는 심리가 있는 건가?

아니면 후에 결혼을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혹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사회인이 된 후 경험하게 되는 경조사에서는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주변 친구들, 직장동료, 선 후배의 결혼식에 가면 진심으로 서로를 축하해 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대부분 부담스러워하지만 후에 내가 돌려받을 생각으로 합리화하는 축의금 문화.

결혼하는 상대의 배경(직업, 외모, 나이, 집안 같은 것들)에 대한 뒷담화와 음식평가.

하객이 없으면 초라해 보이는지 결혼 전 주변인들에게 하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들.

 

내겐 이 모든 것들이 결혼이라는 걸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사실 난 어릴 적부터 외국영화에 나오는 간소화된 결혼식(웬 성당에서 당사자 둘 + 주례 정도)을 동경했었다.

결혼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당사자 둘의 문제인데 왜 타인의 시선에 안달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인들은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결혼은 당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부모의 문제라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 결혼식을 부모님 지인들이 낼 축의금을 염두해서 부모님 퇴직 전에 해야 하는 게 정말 맞는 이치인가?

결혼이라는 건 그냥 단순히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기 위해 하는 의례적인 행위일 뿐인가?

아님 나란 존재는 부모의 큰 인생 플랜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인 건가? 

 

차라리 잘 모를 때 하는 게 낫다고 이미 한 사람들이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물이 뜨거울 줄 알면서도 고통을 참아가며 들어가는 게 쉽지가 않다.

옆에 미지근하고 따뜻한 물도 있는데 왜 굳이?

주변 사람들이 뜨거운 물이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들어가는 거다.

따지고 보면 과학적으로 뜨거운 물이 몸에 좋다고 밝혀진 것도 아니다.

각자 자신의 생리적인 상황에 맞는 물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내가 행복함을 우선순위에 둘 뿐이고, 남들에게 내가 행복해 보임은 내게 중요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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