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라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난 매사 세상에 의문을 가졌음.
특히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내가 뭐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였음.
자살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말 원론적으로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함인가’ 였음.
이런 본질적인 의문은 당시 내가 속한 세상의 질서와 불문율들에 회의감을 주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내 학창 시절은 무난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됨.
물론 그 회의감은 희대의 불행을 대표하는 아이콘인 직장인으로 사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현재는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함인가’에 대한 해답이 어느 정도 구체화 됨.
내가 인생에서 가용할 수 있는 내 시간을 최대한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면 됨.
즉, 내가 생물학적으로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임.
뭐 대단한 천하통일이나 인류애를 위한 헌신, 국가 원수되기 등등의 거창한 목표는 없음.
다만 누구에게나 행복이라는 기준은 다르기에 저 업적을 이룬 위인들은 그게 행복의 조건이었을 수도?
그럼 나에게 행복을 주는 건 무엇일까 그 요소들만 모아 합집합의 끝판왕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유’였음.
내가 자유로우면 내 인생 수명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한 것들로만 채울 수 있기 때문임.
문제는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온전한 자유’라는 것을 가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는 곧 ‘돈’이기 때문임.
자유를 위한 시간이 충분히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 시간을 자유롭게 가용할 수 없음.
때문에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고 있고
어찌 보면 행복한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에 되려 시간을 지불하는 모순된 인생을 살고 있음.
이것이 내 인생에서 해결해야 할 퀘스트 1번인데 사실 이건 스트레스 까지는 아님. 누구나 다 겪는 거니까.
문제는 2번인데 1번을 기반으로 하는 세상사에 인간관계라는 고통이 추가됨.
난 1번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벅차다. 그래서 머스크나 주커버그 같은 위인들을 경외함.
주변사람들은 내가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예전엔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현재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됨.
동물과 달리 인간이 동족(타인)으로부터 고통받는 이유는 인간만이 가지는 욕구 때문임.
이게 바로 ‘인정의 욕구’로 아브라함 매슬로우라는 유명한 사람이 한 말임.
인간은 의식주를 비롯한 안전과 생물학적인 기본욕구를 모두 충족하고 나면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더 나은 사람, 더 괜찮은 사람, 더 나아가 우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함.
물론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임.
인성 = 다른사람들과 구분되는 지속적이고 독특한 심리 및 행동양식
문제는 이 욕구가 개인이 가진 인성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데
1. 정말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 경우 혹은 되어가고 있는 경우
- 타인에게 인정을 구걸하지 않음 = 자존감↑
2.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 강한 경우
- 타인에게 인정을 구걸함 = 자존심↑
2번의 경우가 타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음.
특히 직장 내 갑질, 성희롱 및 사회 전반적으로 무례함 등등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과는 별개로
타인에게 본인이 기대한 상호작용과 그 방식을 강요하는 것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소비하거나 부정적 감정을 소비하지 않아야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음.
이것이 내 퀘스트임 2번임.
'생각한 것들 > 사색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성 (0) | 2024.06.24 |
---|---|
인간과 세상 혐오자 (1) | 2024.06.19 |
버티는 삶 (0) | 2024.05.28 |
직장 내 인간관계 특징(호혜성) (0) | 2024.04.09 |
안정적임을 대표하지만 실제로 가장 불안정한 조직(공무원&공기업) (1) | 2024.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