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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것들/사색들

사기업→공기업(이직 후 3년이 지난 후 생각)

by 흑백인간 202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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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공기업(이직 후 3년이 지난 후 생각)

2015년 ~ 2018년 : 제약회사 공무팀(유틸리티 엔지니어)

2018년 ~ 2021년(현재 재직 중) : 지방공기업 기술직

 

현재 시점으로 보면 각 3년씩 근무했다.

예전에 사기업VS공기업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이후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 해 놓으려 한다.

 

1. 급여

이직하고 처음에 급여가 전 직장에 비해 1/3 정도가 토막 났었다.

이때 좀 멘탈이 흔들려서 다시 업계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었다.

당시 주변에서 공기업은 3년차 이상부터 온전한 수당을 받는다는 이유로 돌아가는 걸 말렸는데

사실 주변인들의 조언때문에 업계로 돌아가지 않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다행히 쉬다 보니 3년차가 돼서 토막 났던 급여가 회복했고,

현재 4년차인데 그래도 먹고는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직하지 않고 계속 업계에 남아있었다면'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 비교가 힘들다.

다만 사기업에 비해 '월급의 노예'의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2. 여가(워라벨)

확실히 좋아졌다.

회사와 일을 대함에 있어서 여유가 생겼다. 물론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근무의 난이도와 강도가 상대적으로 하향되다 보니 내 능력에 비해 업무가 수월해졌다.

완벽한 워라벨은 사실 아직 한국사회에서 누리기 힘든 게 사실이라 큰 기대는 안 했다.

근무지에 따라 종종 주말출근을 하거나 야근을 하기도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에 치이거나 시간에 쫓기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결재를 질질 끄는 일도 없거니와 조금의 실수 정도는 눈감아준다.

(물론 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 부분은 별로라 생각한다)

다만 인간관계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부분은 그냥 직장생활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오는 옵션 같은 존재라 보는 게 맘 편하다.

 

3. 조직문화

업무와 관련하거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대화, 회의, 토론 같은 것들의 향연이 많이 없어졌다.

이게 전문적인 분야의 중앙공기업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없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스공사, 전력공사, 금감원 등등 전문분야 공기업)

공무원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대학&대학원 수준의 지식이 많이 쓰이지 않는 업무가 대부분이다.

요즘(2000년대)에 들어서야 높아진 대학 진학률 때문에 학력들이 함께 높아졌지만

예전 IMF 이전 시대는 고졸 이후 공무원 및 공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흔했다고 알고 있다.

거기에 해마다 연례 반복되는 업무처리, 관습 그리고 직업의 안정성은 개인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러다 보니 구세대와 현세대의 능력, 인식, 인지, 목표가 서로 달라 부딪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공기업뿐만 아니라 이건 어딜 가나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한다.

웬만히 부지런하거나 자신과의 싸움에 능하거나 혹은 자기 계발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이쪽은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기 좋은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좋게 말하면 편안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태함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꽃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회사생활이 인생의 100%는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직장임은 틀림없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부분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제하에)

 

4. 가장 거지같은 부분

이직에 대한 후회를 1%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장 현타?가 올 때는 병신 같은 대화를 하면서 업무를 비효율적으로 처리할 때

회식자리에서도 조직과 관련한 미래의 얘기가 아닌 우스갯소리나 농담이 주일 때

상사가 업무에 대해 좃도 모르는데 거기서 또 우기거나 아몰랑 하는 게 종종 있을 때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나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업무와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에서 타의로 인해 지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함과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하향된 수준의 업무를 하고 있음을 타인이 인지하지 못함

이 두 감정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내가 생각한 만큼의 인정을 못 받고 있다고 느껴서 인 것 같다.

좀 진지충의 느낌으로 쓴 감이 있는데 나쁘게 말하면 조직문화가 전반적으로 존나 무지하다.

(혁신적으로 업무를 추진, 학습, 도전하려고 하지 않고 대부분 관습에 의존적임)

그래서 조금만 잘하면 업무에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일감이 몰려온다.

관공서 가서 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일 하는 사람만 존나게 하고 나머진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공공기관의 특색이라기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웬만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가장 좋은 예가 대학 때 하는 조별과제)

다만 사기업은 매번 하는 얘기지만 능력이 곧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기에 기둥과 같은 존재들이

회사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형태의 조직이 많고 그에 대한 보상이 굉장히 편차가 크다.

반면 공공 쪽은 기둥과 같은 존재들에게 주는 보상에 대한 편차가 그리 크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형태의 비위들이 공공연하고 적나라하게 문화로 자리 잡혀 있다.

(개인적인 친분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한 낙하산 인사 그리고 진급)

 

 

5. 그나마 좋은 부분

거지같은 부분을 너무 안 좋게 썼는지 모르겠는데 반면 좋은 점은 또 극적으로 좋다.

위에 업무 좀 한다 싶으면 일이 많아진댔는데 그래도 사기업에 비하면 껌이다.

물론 민원부서 같이 피 말리는 부서는 제외하고 웬만하면 일 많아도 지할거 할 시간이 있다.

가장 좋은 근거로 근속연수를 보면 된다. 일이 많고 힘들고 어쩌고 지랄해도 안그만 두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사실 공무원 공기업이 어찌 보면 인간관계가 더 힘들 수 있는 요건이 다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잘 다니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인사발령을 내줘서 헤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거지 같음 중 최고의 요소가 인간관계라 생각한다.

그로 인한 거지 같음을 어느 정도는 위의 사유로 중화시켜 준다. 물론 부분적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일이 좋아서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등등 

그럴듯한 이유를 머릿속 한편에 대답용으로 저장해 두고 살지만 결국은 돈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 먹고살고 누리고 인생을 풍요롭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돈의 많고 적음은 표면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가치로까지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일하고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걸 원한다.

하지만 비례적 논리를 따져보면 상대적으로 급여를 많이 받는 직업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전문직군 의사, 판사, 변호사, 약사, 교수 같은)

거기에 사회적 이슈로 인한 환경의 영향(IMF로 인한 직장인 실직과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 몰락)

으로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의 조건에 자연스레 직업의 안정성이 포함되게 되었다.

즉, 급여가 적당히 먹고살만하게 나오면서 정년퇴직 = 좋은 직업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일정 이상의 연금까지 받는다면 일단 먹고사는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되니까 말이다.

이 부분이 직업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게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을 땐 체감이 안된다.

 

6. 이직한 이유와 의사결정 심리

블로그에 따로 글을 진지충 느낌으로 써놓긴 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내 성격 때문이다.

난 매사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행복한 유형의 사람이다.

그렇게 유전적으로 태어난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혹은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하거나 눈치 봐서 하는 걸 싫어한다.

사실 제약 공무의 직무가 재밌어서 적성에 맞긴 했다.

하지만 사기업은 업무에 통용되는 의사결정 대부분이 기업과 조직의 이익에 맞춰서 결정된다.

쉽게 말해 직장생활 중 상사와 의견이 상충될 때 강제로 내 뜻대로 하게 되면 생존에 위협이 된다.

(칼 맞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잘못하면 잘릴 위기에 처한다는 얘기)

물론 그렇다고 공공 쪽이 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존에 위협은 없다.

법을 어기는 것처럼 정말 큰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직장에서 잘리는 일은 없다.

상사와의 의견 상충으로 인한 위협은 대부분 인사조치(유배) 정도지 월급이 안 나오는 경우도 없다.

그래서 나 같은 마이웨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다니기는 좀 낫지 않나 싶다.

위의 이유에 더하기 알파를 하면 퇴근 이후의 시간 또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거였다.

사기업이 퇴근 이후의 삶을 강제하는 문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권고하지도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혹은 TV나 매체들을 보면 그렇게 퇴근 후 무언갈 열심히 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지속적인 직장생활의 유지를 위함이거나 혹은 미래(퇴사 후)에 대한

준비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100% 본인 자유의지로 인한 실행이 몇 % 나 될까.

나 역시 당시 팀장으로부터 퇴근 후 개인 시간 활용에 대한 꼰대적인 조언을 종종 듣곤 했는데

(퇴근 후 뭐하냐, 자격증이라도 더 따라, 영어라도 더 해라 등등)

그런 말들을 이해해보려 곱씹어보면 내 존재 이유가 꼭 회사의 구성원이 되기 위함처럼 느껴졌다.

그 꼰대스러운 말대로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자격증을 더 따 볼까? 영어를 더 공부해볼까?

그래 봤자 난 그냥 자격증 하나 더 있는 팀원일 뿐이고 영어 좀 잘하는 구성원일 뿐이었다.

지주가 있는 땅에서 소작농이 아무리 좋은 경작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지주가 될 수는 없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건 아닌 거 같았다. 아무리 잘해봐야 그 꼰대 이상은 될 수 없다는 게 보인다.

본인이 살아온 삶과 기준을 인생의 정답인 듯 가르치고 강요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인정의 욕구이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변인들의 외압을 견뎌내는 마음이다 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나서야 그만둬야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은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도전을 해보고 싶은데 사기업 근무강도로는 좀

힘들 것 같아서 회사를 그만둠으로 생기는 리스크를 줄이고자 이직한 곳이 이곳이었다.

혹시 도전에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인생에 큰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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