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험 한 것들/취업과 직업

불과 얼음(사기업과 공기업의 극단적 경험)

by 흑백인간 2024. 4. 22.
반응형

 

내가 경험했던 이 두 조직은 흡사 온탕과 냉탕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1. 사기업의 극

내가 다녔던 사기업은 제조업(300명 이하 의약품제조업)이었음.

나름 체계가 어느 정도 있는 좆소였지만 좆소 특유의 노예 가스라이팅은 당연히 존재했음.

 

[노예 가스라이팅]

-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18:00 칼퇴근은 안됨.

- 09시 출근이지만 회의는 08:50에 시작

- 회식 통보는 당일 30분 전에 시전

- 니 업무만 하지 말고 옆 팀원 공백 대비해서 너도 할 줄 알아야 함

- 토요일 쉬는 날인데 워크샵은(1박2일)은 금~토

- 기타 개인의 영역 침범(주말에 뭐 하냐부터 인생조언류 등등)

 

노예 가스라이팅 보다 더 힘든 건 하루하루 업무량이 기본적으로 많았음.

어떤 날은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집 가서 쉬어야지 하고 있으면 퇴근 30분 전에 회식하자 그러는데

장소는 역시 팀장이 좋아하는 단골집(어차피 여기 갈 거면서 뭐 먹고 싶냐고 계속 물어 봄)

가기 싫은 거 억지로 가서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려고 치면 회식 내내 인생조언을 무슨 마른안주 서비스 시키는 패턴으로 계속 시전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란 인간은 대체 뭘 위해서 이리도 고단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걸까?”

 

회사에 존재하는 시간 거의 대부분 내 의지와 기호로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 내 업무 능력이 성장해 단위업무마다의 처리능력이 좋아지면 거기에 비례해서 또 다른 업무가 생겨나는데 이건 마치 빌린 돈을 제 때 갚지 못해 불어나는 빚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음.

 

2. 공기업의 극

지방공기업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부류의 공기업이 아니었음.

'월급은 제때 나오겠지'의 걱정이 필요할 정도로 후진 사무실, 집기류 그리고 사람들.

정말 희한하게도 이 세상은 누군가 조작하는 시뮬레이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전 회사와 상반되는

조직문화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음.

 

[이 회사 무엇]

- 퇴근시간은 둘째고 근무지 이탈하는 경우도 종종 있음

- 회의시간, 약속시간 잘 안 지킴.

- 회식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맨날 회식(회식의 개념을 잘 모르는 듯)

- 술 먹고 금수 되는 사람들 많은데 생각보다 심하게 너그러움

- 자기 업무 아니면 옆 사람 죽어도 신경 안 씀

- 회의나 기타 공적인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 수준이 너무 민망함

 

그래 사실 처음엔 월급 빼고 다 좋았음.

업무량이 많지 않아서 일단 편했고 그전에 비해 업무의 수준도 많이 하향됨.

근데 이게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조직에서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여기 와서 느끼게 됨.

구성원들의 행동이나 말들이 너무 수준이하(물론 내 기대치 이하)라 사실 업무적으로 어떤 결과나 나오거나

혹은 그 과정들이 너무 비효율적, 감정적이고 불필요한 시간소모, 에너지소모가 과했음.

쉽게 말해 쓸데없는 것에 너무 큰 시간과 힘들 쏟는 반면, 정말 중요한 일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쉽게 넘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조직에 정내미가 떨어지더라.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더 극적으로 느끼는 것 같지만 이건 또 일이나 사람에 치이는 문제랑은 다른 느낌으로 내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더라.

혹 조금 수준 떨어지는 AI의 NPC가 즐비한 RPG게임을 답답한데 강제로 해야 되는 느낌?

 

1번의 사기업은 '힘들고 지친다'의 느낌이었다면

2번의 공기업은 '외롭고 공허하고 답답하다'의 느낌임.

 

3. 양극을 경험하고 느낀 점

사실 이 두 회사를 다니기 전에도 몇 번의 다른 회사를 다녀 봄.

나도 이제 직장생활만 10년 가까이 해온 사람으로서 현대사회가 어떠한가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묘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함.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은 사람임.

살면서 생기는 좋은 일, 나쁜 일, 쉬운 일, 어려운 일은 모두 사람이 만드는 거고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각각 함께 근무하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 만족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음.

물론 돈, 간판, 워라밸 등 표면적인 목표는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는 의, 식, 주와 같이 필수재인 느낌이라고 치면 어찌 됐든 직장인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계층의 사람들은 어딜 다니던 참고 다니긴 해야 함.

대신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하면 어차피 다녀야 할 직장을 행복하게 다니느냐 불행하게 다니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래서 난 요즘에 사람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음.

 

4. 그래서 사람에 대해 알면 뭐가 달라지나?

달라지긴 하더라.

사실 난 여태껏 살면서 나에 대해 잘 몰랐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자세히 말하면 좋고 싫은 걸 모르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었음.

신기한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 감정에 관한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더라.

(마음에는 있지만 상대가 상처받을까 혹 내가 질타받을까 아니면 관습에 의해 좋다고 못하고 싫다고 못함)

왠지 우리나라 유교사상 때문인 것 같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 더 안타까움.

우선 나에 대해 먼저 알고 그다음 나와 상호작용 하는 주변인들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사람은 그 사고방식에 따라 대략적으로 몇몇 유형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 유형에 따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게 좋을지 대부분 책에 나와 있더라.

물론 100% 상황에 맞진 않겠지만. 이런 개념을 진작에 알았다면 1번의 좆소기업을 그렇게 감정적으로 때려치우진 않았을 것. 사실 그때의 난 내가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음.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잘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지금은 알게 됨.

물론 지금도 잘 안다고 자부할 순 없기에 주변인들에게 테스트해 보는 셈으로 상호작용을 걸고 있음.

반응형

댓글